"을묘박해(1795년): 조선 땅에 뿌린 순교의 씨앗 "
1795년은 조선 천주교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바로 "을묘박해"가 일어난 해이기 때문입니다. 을묘박해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탄압이자 대규모 검거가 이루어진 사건으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을묘박해의 배경: 서학의 확산과 조정의 경계심
18세기 후반, 서학(천주교)은 조선 사회에 꾸준히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문적인 관심사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양반뿐 아니라 중인, 상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평등사상과 내세관 등 천주교의 가르침은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천주교의 확산은 조선 조정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천주교가 전통적인 가치관과 질서를 뒤흔들고, 심지어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서양 세력과의 연계를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천주교에 대한 조정의 경계심은 점차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을묘박해의 발발: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윤유일 사건
을묘박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바로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의 입국이었습니다. 1794년 말, 북경교구 구베아 주교의 명을 받고 조선에 잠입한 주문모 신부는 이승훈, 정약종 등 핵심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히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의 입국은 조선 천주교회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동시에 조정의 감시망에 포착될 위험을 높였습니다.
이듬해인 1795년,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이 발각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당시 의금부가 천주교 신자 윤유일과 지황을 체포하여 혹독하게 고문하는 과정에서 주문모 신부의 존재와 그의 활동 내역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윤유일은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진술은 조정이 천주교 탄압을 본격화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여러 신자들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면서, 을묘박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을묘박해의 전개와 피해
을묘박해는 주로 천주교 신자들의 색출과 검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조정은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쫓는 한편, 그와 연루된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전국적인 수사망을 가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유일, 지황 등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려는 조정의 노력은 집요했습니다. 하지만 주문모 신부는 교인들의 헌신적인 보호로 약 1년간 은신하며 선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박해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었으며, 조선 천주교회는 큰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을묘박해의 의미와 영향
을묘박해는 조선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 최초의 본격적인 탄압: 이 사건은 단순히 몇몇 신자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천주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최초의 대규모 사례였습니다.
- 천주교 박해의 서막: 을묘박해는 이후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 조선 후기 수많은 천주교 박해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조선 사회에서 천주교가 겪어야 할 고난의 역사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 신자들의 신앙심 강화: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희생은 오히려 조선 천주교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고 신앙심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조정의 천주교 인식 변화: 을묘박해를 통해 조선 조정은 천주교가 단순히 이단적인 사상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을묘박해는 조선 후기 사상적 혼란과 사회 변동 속에서 천주교가 직면했던 어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동시에 이는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키며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를 있게 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용기와 희생을 되새기게 합니다. 1795년의 그 날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신앙의 자유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사이트 : 천주교 어농성지(http://onong.or.kr/xe/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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