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벽의 입교와 전교 활동 (1784년) - 한국 천주교회의 첫 출발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7. 26.
반응형

이벽의 입교와 전교 활동 (1784년) - 한국 천주교회의 첫 출발

 

1784년, 조선의 한 젊은 학자가 중국에서 온 서적들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이벽,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였습니다. 그가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전교 활동을 시작한 이 해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벽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조선 땅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한 진정한 개척자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진정한 신념이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여정입니다.

이벽

이벽이라는 인물

명문가의 둘째 아들

이벽은 1754년 경기 포천(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려 말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이제현의 17대 후손으로, 경주 이씨 명문가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는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특히 철학과 사상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이벽 역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학문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실학자로서의 면모

이벽은 당시 조선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실학 사상에도 깊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실학자들은 전통적인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을 추구했는데, 이벽 역시 이런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성향은 후에 서구의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야말로 그를 한국 천주교의 개척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중국 서적과의 만남

새로운 세계의 발견

당시 중국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들과 중국의 실학자 서광계, 이지조 등이 저술한 한문으로 된 천주교 서적들은 천주교의 교리, 신심, 철학, 전례와 아울러 서구의 과학, 천문, 지리 등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벽이 처음 이런 서적들을 접했을 때의 감동은 어떠했을까요?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의를 변증한 기독교 호교론으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593년이나 1594년에 저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치밀한 연구와 자발적 수용

이벽은 이러한 서적들을 치밀히 연구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발적 수용'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는 누군가의 강요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천주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벽은 단순한 신자가 아니라, 천주교 교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후에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천진암 강학회 - 신앙의 씨앗을 뿌리다

학문 모임에서 신앙 공동체로

1777년 권철신, 정약전 등 기호 지방의 남인 학자들이 광주의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실학적인 인식을 깊이 하고 새로운 윤리관을 모색하려는 목적으로 강학회를 열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이벽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때 이벽이 천주교에 대한 지식을 동료 학자들에게 전하여, 후일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천주교 신앙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천진암 강학회는 단순한 학문 토론의 장을 넘어서 한국 천주교의 요람이 된 것입니다.

 

동료들과의 깊은 교감

천진암에서 이벽은 권철신, 권일신 형제, 정약전, 정약용 형제 등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고, 새로운 사상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벽은 이들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면서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주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이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784년, 운명적인 만남

이승훈의 귀국과 성물 전달

1784년 3월 24일 이승훈이 서울에 당도하여 이벽에게 성서와 십자고상 및 여러 가지 성화, 성물을 갖다 주었고 거기서 보고 물은 바를 소상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승훈은 아버지 이동욱을 따라 연행사의 일원으로 북경에 갔다가 그곳에서 천주교를 접하고 세례까지 받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이벽에게는 이 순간이야말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을 통해서만 알던 천주교가 이제 구체적인 성물과 직접적인 체험담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세례와 신앙공동체의 시작

1784년 겨울 이벽은 자신의 집에서 권일신, 정약용과 함께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벽이 받은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였습니다. 이 이름은 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처럼, 이벽은 조선 땅에 천주교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길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날의 세례식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 땅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세례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전교 활동

체계적인 전교 전략

이벽은 서울 수표교에 집을 마련해 교리를 깊이 연구하는 한편, 교분이 두터운 양반 학자와 인척들 및 중인 계층의 인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천주교를 전교하였습니다. 그의 전교 활동은 매우 체계적이고 전략적이었습니다.

이벽은 무작정 많은 사람에게 전교하기보다는,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부터 차근차근 접근했습니다.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신뢰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초기 신자들의 탄생

이때 세례받은 사람들이 권철신, 권일신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대의 뛰어난 지식인들로, 후에 한국 천주교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벽의 전교 활동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박애정신이 당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전교 활동은 양반층뿐만 아니라 중인층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이벽이 남긴 유산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기틀

이벽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이 외국 선교사들의 전교를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과 달리, 한국은 이벽과 같은 조선인들의 주도로 천주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천주교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조선의 문화와 사상적 토양 위에서 자란 천주교였기 때문에, 외래 종교라는 거부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식인 중심의 신앙 운동

이벽이 주도한 초기 천주교 운동은 지식인 중심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는데, 이들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인들의 참여는 한국 천주교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천주교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조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785년, 이벽은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짧은 생애 동안 한국 천주교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이벽 요한 세례자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 진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 정신, 그리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열정.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입니다.

1784년 그가 시작한 작은 불씨는 오늘날 수백만 명의 한국 천주교인들의 신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벽의 용기 있는 첫걸음이 없었다면,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삶과 신앙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빛나는 별처럼 우리 곁에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