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관리 · 생산성 · 라이프스타일
일정이 빽빽할수록 더 많이 이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성과는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중요한 것을 했느냐에서 온다. 지금 당신의 캘린더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다

— 왜 우리는 불필요한 일정을 없애지 못하는가
현대인의 하루는 회의, 약속, 모임, 답장, 요청으로 가득 차 있다. 달력은 빈칸 없이 채워져 있고, 그 자체를 '열심히 사는 증거'로 여기는 분위기마저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바쁜 삶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솔직한 답은 '아니오'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심리적 이유가 있다.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두려운 것, 바쁨이 곧 가치 있음이라는 잘못된 등식, 지금 당장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여도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이 세 가지가 우리 달력을 과부하 상태로 유지하는 주범이다.
이 글은 그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다룬다. 단순히 '거절하라'는 추상적 조언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일정을 솎아낼지, 역사적 맥락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이야기를 전한다.
— 역사가 증명하는 '덜 함으로써 더 이룬' 사람들
불필요한 약속을 줄이고 핵심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은 현대의 자기계발 트렌드가 아니다. 시간을 가장 아끼고 선별적으로 쓴 사람들이 가장 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기원후 1세기에 이미 "바쁨은 게으름의 한 형태"라고 썼다. 그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분주하게 만들면서도 정작 삶의 진짜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불필요한 사교 모임과 공식 행사를 줄이고 깊은 사유의 시간을 지키라는 그의 조언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당신이 바쁜 것은 삶이 충만하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이 자신을 너무 많은 것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이다.
—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취지 요약)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복귀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제품 라인업 축소였다. 당시 애플은 350개 이상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잡스는 이를 단 10개로 줄였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집중은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가지 좋은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원칙은 비즈니스 전략을 넘어 그의 일정 관리 철학이기도 했다. 잡스는 불필요한 회의를 혐오했고, 정말 중요한 문제에만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했다.
19세기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단순하게 살았다. 그 실험의 목적은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했을 때 삶이 얼마나 선명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의 저서 『월든』은 현대 미니멀리즘과 에센셜리즘의 사상적 원류로 평가받는다.
— 과학이 말하는 과부하 일정의 대가
일정 과부하는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신체와 인지 기능에 측정 가능한 손상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처리해야 할 과제와 약속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가 급격히 증가한다. 결정 피로란 선택을 반복할수록 판단력이 저하되는 현상이다. 이스라엘 연구팀이 가석방 심사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오후 늦게 심사할수록 가석방을 거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단지 뇌가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력도 마찬가지로, 과도한 일정은 중요한 순간의 사고력을 갉아먹는다.
만성적인 일정 과부하는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지속적으로 높여 면역 기능 저하, 수면 장애, 집중력 감소로 이어진다. 번아웃 연구의 권위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흐(Christina Maslach)는 번아웃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일의 과부하(Workload)'를 꼽는다. 쉬지 않고 달리는 캘린더는 번아웃의 왕도(王道)다.
반대로, 그레그 맥커운(Greg McKeown)이 저서 『에센셜리즘(Essentialism)』에서 제시하는 개념처럼, 의도적으로 덜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더 높은 성과와 더 깊은 만족감을 경험한다고 보고된다. 더 적게, 더 잘하는 것이 더 많이, 대충 하는 것보다 낫다.
— 어떤 일정이 '불필요한가': 판단 기준 만들기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 막막하다면, 먼저 기준이 필요하다. 일정을 솎아낼 때 쓸 수 있는 두 가지 강력한 필터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90점 룰'이다. 그레그 맥커운이 제안한 이 방법은 단순하다. 어떤 일정이나 요청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했을 때, 9점 이상이 아니면 거절한다. 8점짜리처럼 보이는 일정은 실제 경험해보면 6~7점인 경우가 많다. '나쁘지는 않은' 수준의 일정들이 달력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두 번째는 '만약 지금 이 일정이 없었다면, 나는 기꺼이 새로 넣겠는가?'라는 질문이다. 관성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일정들은 이 질문에서 걸러진다. 습관적으로 참석하는 주간 회의, 언제부터인가 끊기 어색해진 정기 모임, 의무감에서 나온 약속들이 이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줄여야 할 일정이라는 신호다.
지킬 일정
- 핵심 목표에 직결되는 것
- 진심으로 원하는 관계
- 회복과 재충전에 기여하는 것
- 90점 이상의 가치를 주는 것
줄일 일정
- 거절하기 민망해서 잡힌 것
- 관성으로 유지되는 정기 모임
- 참석해도 남는 것이 없는 회의
- 나 아니어도 되는 자리
01 주간 일정 감사(Audit): 달력을 소리 내어 읽어라
일정을 줄이는 첫걸음은 지금 달력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그 주의 모든 일정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각각에 대해 '이것은 왜 있는가?'라고 자문해보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머릿속으로만 확인할 때와 달리, 실제로 말로 뱉으면 이유 없이 잡혀 있는 일정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과정을 한 달만 해봐도, 자신도 모르게 달력에 끼어든 일정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과의 모임은 나올 때마다 피곤하다', '이 회의는 이메일 하나로 대체될 수 있다' 같은 깨달음이 따라온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관리자의 일정'과 '창작자의 일정'을 구분한 에세이로 유명하다. 그는 창작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는 회의 중심의 달력이 아니라, 긴 시간 블록 중심으로 일정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신의 달력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02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 관계를 잃지 않으면서 일정을 줄이는 언어
일정을 줄이는 데 가장 큰 장벽은 '거절하면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명확하고 따뜻한 언어로 거절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신뢰와 존중을 얻는 경우가 많다.
💬 실천 문구 예시
"그 날은 이미 집중 작업 시간으로 잡아두었어요. 정말 아쉽지만 이번엔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참여하기 어려운 시기라서, 제가 빠지는 게 오히려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엔 어렵지만, ○○월에는 꼭 함께하고 싶어요."
공통된 원칙은 세 가지다. 미안함보다 명확함을 먼저, 대안이나 시기를 제시할 수 있으면 제시하기, 그리고 이유를 길게 늘어놓지 않기. 과도한 해명은 거절을 약하게 만들고, 상대방이 설득할 틈을 준다. 짧고 진심 어린 거절이 가장 강하다.
작가 그레그 맥커운은 '비필수적인 것에 예스라고 말할 때마다 진짜 중요한 것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절은 관계를 끊는 행위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행위다. 그 시각의 전환이 거절을 쉽게 만든다.
03 회의를 절반으로 줄이는 3가지 원칙
직장인에게 일정 과부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회의다. 많은 회의가 '이 내용은 이메일로 충분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다. 회의 자체를 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불필요한 회의를 거르는 기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회의 소집 전 3가지 질문
① 이 회의의 목적이 결정인가, 정보 공유인가, 아이디어 창출인가? 정보 공유만이 목적이라면 문서나 메일로 대체한다. ② 이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과 '있어도 좋은' 사람을 구분했는가? 참석자를 줄이면 회의의 집중도가 올라간다. ③ 이 회의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면 비동기 소통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두 판의 피자 규칙(Two-Pizza Rule)'으로 유명하다. 피자 두 판으로 배불리 먹지 못할 만큼 참석자가 많으면 회의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회의 참석자를 6~8명 이내로 제한하는 이 원칙은 아마존의 빠른 의사결정 문화의 기반이 됐다.
또한 모든 회의는 시작 전에 명시적인 종료 시간을 설정하고, 그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끝나는 시간이 불분명한 회의는 반드시 길어진다.
04 '보호 시간' 블록 만들기: 가장 중요한 일정은 비어있는 시간이다
일정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뺄셈이 아니다. 무언가를 비우고, 그 공간을 지키는 것이다. '보호 시간'이란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 시간 블록을 미리 달력에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 다른 일정이 들어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자신의 시간을 예약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씽킹 타임(Thinking Time)'을 정기적으로 확보한다. 달력에 미리 잡혀 있지 않으면, 그 시간은 반드시 다른 회의와 요청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 실천 방법
매주 월요일, 그 주에서 가장 중요한 딥워크 시간을 달력에 '예약 완료'로 먼저 표시하라. 외부에서 보면 다른 일정과 동일하게 보인다. 이 시간은 진짜 중요한 작업, 회복, 사색,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위해 쓴다.
빈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집중을 위한 충전이자, 갑작스러운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의 완충재다. 달력이 항상 꽉 차 있으면 예상치 못한 중요한 일에 대응할 여지가 없다.
05 정기 일정의 '유효기간' 설정하기
많은 정기 모임과 정기 보고는 처음 생길 때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가 사라져도 일정 자체는 관성으로 남는다. 정기 일정에는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기 일정을 잡을 때 처음부터 '3개월 후 재검토'라는 조건을 달아둔다. 3개월이 지나면 이 모임이 여전히 필요한지를 묻는 간단한 질문 하나로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그냥 흘려보내면 1년, 2년이 지나도 없애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조직에서도 이 원칙은 효과적이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 전 CEO는 모든 정기 회의를 주기적으로 검토해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것들은 과감히 없앴다. 그는 회의를 '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더 중요한 일을 위한 도구'로 취급했다.
06 소셜 의무 일정 다루는 법: 관계를 지키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균형
직업적 일정만큼이나 소셜 의무 일정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모임, 단순히 '안 나가면 이상하게 볼까봐' 참석하는 자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요한 점은, 모든 사교적 일정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오히려 에너지를 채워준다. 문제는 의무감만으로 나가는 자리다. 이를 구분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이 약속을 앞두고 내가 설레는가, 아니면 부담스러운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심리학자 수전 케인(Susan Cain)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사회적 에너지를 '한정된 배터리'처럼 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외향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자리가 배터리를 충전해주고, 어떤 자리가 방전시키는지를 솔직하게 파악하는 것이 소셜 일정 관리의 출발점이다.
07 작게 시작하기: 이번 주 딱 하나만 빼라
지금까지의 내용이 설득력 있게 느껴져도, 막상 실행하려면 막막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한 가지만 시작하라.
이번 주 달력을 열고, 딱 하나의 불필요한 일정을 찾아라. 참석하지 않아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회의, 단순히 관성으로 유지되는 모임, 거절하지 못해서 잡은 약속. 그것 하나를 비워라. 그리고 그 빈 시간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 넣어라.
그 경험이 다음 결정을 쉽게 만든다. 첫 번째 거절은 어렵지만, 세 번째는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는 것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점진적인 습관의 형성이다. 그 첫 걸음이 전부다.
— 마치며: 비어있음이 삶을 채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車輪의 가운데는 비어있어야 수레가 굴러간다." 바퀴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비어있어야 하듯, 삶도 여백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간다. 꽉 찬 달력은 겉으로는 풍성해 보이지만, 여백 없이는 굴러가지 못하는 바퀴와 같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용기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때로는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가치 있다.
오늘 당신의 달력을 열어라. 그리고 하나를 지워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고 문헌 및 출처
- Greg McKeown, Essentialism: The Disciplined Pursuit of Less, Crown Business, 2014
-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Epistulae Morales ad Lucilium)』, 기원후 약 65년
-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11장 — 국립중앙도서관 한문 고전 데이터베이스
- Maslach, C., & Leiter, M. P. (2016). Burnout. In Stress: Concepts, Cognition, Emotion, and Behavior. sciencedirect.com
- Danziger, S., Levav, J., & Avnaim-Pesso, L. (2011). Extraneous factors in judicial decisions. PNAS.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018033108
- Paul Graham, 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 (2009). paulgraham.com
- Susan Cain, Quiet: The Power of Introverts in a World That Can't Stop Talking, Crown Publishers, 2012
- Cal Newport, Deep Work, Grand Central Publishing, 2016
- Henry David Thoreau, Walden; or, Life in the Woods, Ticknor and Fields, 1854
- Harvard Business Review: Stop the Meeting Madness (2017)
- 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Work Stress — 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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